안방극장, '~같기도' 드라마 일색…"자기복제에 빠진 까닭?"
잠시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보자. 2008년 10월에 MBC 전파를 타고 있는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은 10년전 '야망의 전설'과 닮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3년전 '모래시계'와도 비슷하다. 가장 가깝게는 5년전 방송된 '올인'을 보는 느낌이다.
2008년 10월 KBS 전파를 타고 있는 '바람의 화원'과 '바람의 나라'. 이 두 작품 역시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바람의 화원'에서 박신양이 보여주는 '김홍도'는 한복을 입은 '금나라'(쩐의 전쟁)다. '바람의 나라' 속 송일국도 마찬가지. '무휼'에게서 그의 할아버지 '주몽'이 겹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창조의 고통을 설명하는 말이다. 동시에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명제다. 그만큼 오롯이 새로운 것은 없다. 최근 방영 중인 '에덴의 동쪽',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만 봐도 그렇다. 전작의 모습이 그대로 스며있다.
데자뷰 드라마라는 폄하에도 불구 전작을 답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용이나 연기면에서 전혀 새로움을 주지 못한 채 자기복제에 빠진 드라마를 살펴봤다. ▲'올인' ▲'야망의 전설' ▲'모래시계' 같기도 한 '에덴의 동쪽'과 ▲ '쩐의 전쟁' 같은 '바람의 화원', ▲'주몽'같은 '바람의 나라'가 그 예다.
◆ '본' 것 같기도 : 장면이 닮았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TV '에덴의 동쪽'은 '본 것' 같기도의 절정을 이루는 드라마다. 여러 편의 드라마를 교묘히 섞어놓은 듯한 장면이 반복되며 데쟈뷰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등장 인물의 캐릭터부터 관계도와 같은 구성은 물론이고 특정 대사, 특정 장면까지 과거 인기 드라마와 오버랩되는 것.
동생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고 외국으로 도망갔다가 카지노 대부의 눈에 들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동철(송승헌 분)의 모습을 '올인'의 인하(이병헌 분)가 떠오른다. 형의 도움을 받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빠져나오는 동욱(연정훈 분)은 '야망의 전설'의 정태(최수종 분)의 탈출기와 흡사하며 군에 징집돼 끌려가는 모습에서는 '모래시계'의 태수(최민수 분)가 보인다.
러브 스토리를 그린 특정 장면들 역시 몇몇 드라마와 겹친다. 동철과 영란(이연희 분)의 엇갈린 사랑은 '모래시계'의 태수와 혜린(고현정 분)의 애증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동욱과 지현(한지혜 분)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사랑은 1970~80대 신파극의 단골소재다.
◆ '한' 것 같기도 : 연기가 닮았다
연기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신양. '파리의 연인'부터 '쩐의 전쟁'까지 그의 열연은 드라마를 살리는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신작인 '바람의 화원'에서는 오히려 그의 연기가 독이 되고 있다. 전작과 비슷한 '같기도' 연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김홍도에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박신양은 지난 5회 도화서 화원 시험장면에서 '한기주'(파리의 연인) 혹은 '금나라'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아이는 시험도 치루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입니다"라고 소리치는 박신양은 "왜 내 여자라고 말을 못해" 또는 "사람 목숨 죽이고 살리는 거 돈 밖에 없어"라고 부르짖는 한기주와 금나라의 조선시대 버전이었다.
송일국에 대한 지적도 마찬가지다. '무휼'로 분해 "공격하라"고 소리 지르는 송일국이나 '주몽'에서 "공격하라"고 외치는 송일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시대배경은 물론이고 머리나 의상까지 비슷해 시청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 드라마 : 자기 복제에 빠진 까닭
브라운관이 뻔한 이야기에 빠진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률 확보를 위해 과거에 성공한 흥행공식을 답습하는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최근 젊은층이 TV 밖으로 빠져 나가고 중장년층이 핵심 시청자로 떠오르자 방송사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뻔한 소재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됐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씨는 "젊은 시청자층을 흡수할 때는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겐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통한다"면서 "'하얀거탑'이나 '커피프린스' 등 새로운 드라마가 '황금신부'나 '조강지처클럽'보다 고전하는 이유가 단적인 예다. 방송사부터 모험을 주저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흥행공식에 따라 진부함을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악수'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창작없는 드라마는 한류 산업에도 큰 장애가 된다. 이문원씨는 "시청률을 위해 과거 히트 아이템을 재조합하는 형식이 선호된다면 한국 드라마는 같기도 드라마 왕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배우 : 뻔한 연기에 빠진 까닭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모험의 부작용에 대해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타 산업에서 모험은 쓸데없는 도전이라는 것. 그는 "연예계가 호황일 때는 이 작품 저 작품을 통해 나름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황에서 변신은 무모한 도전이다"며 스타들의 안전 지향성에 대해 말했다.
실제로 최근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변신보다 안전을 택하는 추세다. 물론 연기력의 한계때문에 변신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이미지나 연기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이름값을 이어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경향이 짙다.
이문원씨는 "지금처럼 스타 파워가 약해진 상황에서 배우들은 실험과 도전으로 위기를 타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타 산업 자체가 도전 정신을 잃은지 이미 오래"라며 스타기 고정된 이미지를 답습하고 해왔던 연기를 반복하는 까닭을 설명했다.
드라마 뿐 아니라 배우에게도 변신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같기도' 장면과 '같기도' 연기가 지금 당장은 편할 수 있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로운 장르와 연기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한국 방송·연예계는 언제나 정체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한류'산업에도 치명타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