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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들이 ‘Fun한 굴욕’을 택하는 의미는?

러시아 2008. 10. 28. 10:10

 



신비주의의 보루였던 톱스타마저 신비주의를 버리고 있다. 최근까지 신비주의를 고수해온 서태지는 자신을 희화화하는 유머광고에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4년에 작품 한 편 출연할 정도로 과작이며, 작품활동 외에는 CF 출연밖에 하지 않는 이영애는 MBC ‘스페셜’에 나와 혼자 외출하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는 등 ‘털털한 일상’을 보여주었다.

장동건은 ‘되고송’으로 코믹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도 ‘무릎팍도사’ 등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 대중과 높이를 맞추려 하고 있다.

이제 엄숙하고 고고한 ‘성벽’에 둘러싸인 신비의 스타는 배용준 한 명밖에 없게 됐다. 배용준은 한국 팬 못지않게 일본 팬을 의식해야 하므로 작품 속에서 형성된 콘셉트를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제 국내에 신비주의 스타는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서태지가 신비주의를 탈피하면서 선택한 마케팅 콘셉트는 신비주의의 대척점이랄 수 있는 ‘굴욕’이다. 서태지는 CF에서 소녀팬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데 아저씨 누구세요?”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서태지의 쇼’ CF를 기획한 제일기획 남상일 국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서태지의 모습은 사람들이 많이 봐왔던 모습이니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고, 서태지 씨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면서 “서태지 씨가 함께 아이디어를 짜고 고민했다. 스스로 애드리브까지 해가며 유머러스한 연기와 굴욕적인 표정 연기를 소화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톱스타까지 신비주의를 버리고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이야깃거리가 필요한 인터넷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스타는 대중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대중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스타는 대중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대중이 스타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의 근거 정도는 제시해줘야 한다.

스타에 대한 네티즌의 이야기는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양이 축적되면 질적 전환을 이뤄 마치 그런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주인공 두루미를 연기하는 이지아가 그런 경우다. 이지아는 ‘태왕사신기’ 한 편 출연으로 벼락스타가 됐지만 대중과 소통이 거의 없다. 네티즌은 언론 보도와 결부해 학력과 전력 등에 관해 지속적으로 이지아와 관련된 이슈를 만들어낸다. 이 상황만으로도 이지아는 마치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는 아예 대중문화 소비자가 생산을 겸하는 문화 트렌드를 읽고 ‘굴욕’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자신을 던져 그 안에서 대중을 놀게 해줬다. 스타와 관련된 사진(동영상)과 글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네티즌에게 기꺼이 재료를 준 것이다. 사실 ‘굴욕’은 단어 뜻만큼 굴욕적이지 않다. 연예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자연스레 즐기는 대중의 기호와 합쳐진 현상일 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스타의 ‘굴욕’은 대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수준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되쏘는 문화주체적 행위”라면서 “‘굴욕’은 대중이 또 다른 방식으로 대중문화 담론을 재가공해 문화를 주도하는 ‘프로슈머’의 문화인데, 스타는 어떤 형식으로건 이런 흐름에 편입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석했다.

톱스타의 잇단 탈신비주의는 스타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기도 하다. 사회 시스템도 인터넷 공간처럼 바뀜에 따라 수직적인 스타는 수평적인 스타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철학자인 김용석 영산대 교수는 “대중스타가 힘을 발휘하는 방식은 수직적 지배(슈퍼스타)가 아니라 수평적 침투와 연계력(하이퍼스타)으로 변했다”면서 “슈퍼스타의 메커니즘은 격리와 추앙에 있지만 하이퍼스타의 그것은 침투와 동화에 있다”고 쓴 적이 있다.

대중에게 인기 얻기를 원하는 스타는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킬 게 아니라 빨리 내려와 대중에게 침투해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