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으로 통하는 지하터널을 뚫은 끝에 이들은 수백 개의 금고를 턴다. 이제 남은 건 성공적으로 도주해 새 삶을 사는 일뿐. 그런데 경찰은 물론 정보기관인 MI5와 범죄조직까지 이들을 뒤쫓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7명의 강도단은 자신들이 턴 금고에 돈과 보석 외에 뭔가 심상치 않은 물건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뱅크잡'은 경천동지할 플롯이나 자극적 액션은 없지만,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즐기는 이들에게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장르의 기본 문법에 충실하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은행을 터는 과정, 즉 '어떻게'보다 털고 난 후 쫓기게 된 상황, 즉 '왜'에 무게중심이 가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땅굴을 파고 금고를 털기까지의 긴박감보다 정보기관과 범죄조직으로부터 이중의 압박을 받는 난국을 테리와 초짜 강도단이 어떻게 돌파하는지가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다.
'왜'와 금고는 이렇게 얽힌다. 흑인 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 범죄자 마이클 엑스가 하원의원 등 고위 관료는 물론 왕실의 일원인 마거릿 공주의 혼외정사마저 사진으로 찍어 협박한다. 그는 사진을 로이즈 은행 금고에 보관한다. MI5는 이 사진을 빼내기 위해 마틴을 고용해 은행강도 사건을 벌인 것. 부패 경찰들을 위한 정기 상납 내역을 기록한 범죄조직 우두머리의 장부도 금고 안에 있다. 경찰이나 조직이나 몸이 바짝 달아오를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뱅크잡'의 내용은 1971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당시 털린 수백 개의 금고 중 100명 이상의 금고 주인이 도난품 확인을 거부했다. 범인이 누군지, 잡혔는지, 도난품이 무엇인지는 보도통제 탓에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끝부분에도 나오지만, MI5는 이 사건을 2054년까지 기밀로 분류했다. 사건의 이 같은 처리방식 때문에 숱한 추측이 난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