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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우, 할리우드서 길을 잃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더라도 항상 자기 문화와 정신은 잃지 말아야 한다." 지난 여름 자신의 영화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홍보차 한국을 찾은 우위썬 감독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20년 동안 작품 26편을 연출한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간 아시아 감독 중 가장 성공한 연출자로 꼽힌다.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러시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충고는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최근 한ㆍ미 합작 영화가 붐을 이루면서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비 장동건 이병헌 전지현 송혜교 강혜정 등 기존 배우 그룹에 최근에는 가수 손담비까지 할리우드 영화 '하이프 네이션'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적 색채가 드러나는 영화나 캐릭터를 맡지 못해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 중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은 가장 먼저 베일을 벗을 전망이다. 이달 초 모든 후반기 작업을 끝낸 장동건 주연의 영화 '런드리 워리어'가 다음달 처음 공개되는 것.

'런드리 워리어'는 지난해부터 장동건과 할리우드 스타 케이트 보스워스가 함께 주연을 맡아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바 있다. 총제작비 5000만달러가 투입된 이 영화는 다음달 미국 메이저 배급사들을 대상으로 첫선을 보인다. 여기서 장동건은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바다를 건너온 신비의 무사 역을 맡았다.

이미 지난 5월 영화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른 비는 내년에 개봉하는 '닌자 암살자(Ninja Assassin)'에 출연한다. 배역도 조연에서 주연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그가 맡은 캐릭터는 한국적 정서에서 보면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피드 레이서'에서 아시아계 레이서를 맡은 반면 이번 '닌자 암살자'에서는 제목 그대로 일본색이 짙은 닌자 역을 연기한 것. 또 한 명의 한국인 닌자는 내년에 개봉하는 영화 'GI 조'에서 이병헌이 연기한다. 특수부대 활약을 그린 이 영화에서 이병헌 역은 코브라군단 최고 무사 '스톰 섀도'다. 역시 일본 색채가 강하다.

배우 전지현도 일본 캐릭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할리우드 영화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 출연하는 것. 극중 복장이 일본풍 교복과 기모노를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많아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진출에만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문화적 파급력을 생각할 때"라면서 "(영화에서) 한국을 왜곡했다며 '007' 출연을 거부한 차인표 씨 사례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충무로 관계자도 " '월드스타' 간판만 따고 보자는 일부 기획사의 안일함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재봉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는 철저히 상업적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동양인 캐릭터에 국가별 차별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면서 "영화의 문화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한국 색채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