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시대가 열렸다. 작가의 의도와 전개에 맞게 캐릭터를 완성하는 정도에 따라 배우의 가치가 결정된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중에서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과 SBS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는 대표 배우들이다. 각각 지휘자와 화원 역을 맡아 캐릭터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김명민과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이름은 사라진지 오래다. 시청자들은 강마에와 신윤복 자체에 열광하고 있다.
▶이순신-오달건-장준혁 그리고 강마에
김명민은 우선 배우라는 이름을 버리는 스타일이다. 캐릭터와 혼연 일체하는 방식을 택한다. 김명민은 지휘자 강마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수 많은 악보를 통째로 외웠다. 촬영 몇 달 전부터는 서울내셔널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있는 서희태 교수에게 직접 지휘를 배웠다. 정명훈 지휘자를 참고해 머리카락을 길러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이런 노력으로 김명민을 통해 강마에를 읽어내게 했다.
김명민이 완성시킨 강마에 캐릭터는 독단적이고 괴팍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다. 거친 입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이 강마에에게 열광하는 건 견고함 속에 숨어 있는 유연함 때문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소유했다는 걸 쉽게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눈빛은 로맨틱한 고백보다 더 애절하다. 여기에 김명민 특유의 저음은 냉랭한 캐릭터를 한껏 살려준다. 긴 대사를 단숨에 내뱉는 말투는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눈썹 끝을 올린 화장은 거칠고 냉혹한 이미지를 더했다.
김명민은 캐릭터 소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마다 ‘김명민 표’ 연기를 선보였다. 2005년 방영된 KBS ‘불멸의 이순신’은 김명민 표 연기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다. 수염을 달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쳤다. 대사마다 힘이 실리면서 캐릭터가 강렬해졌다. 김명민은 이 작품으로 2005년 ‘KBS 연기 대상’을 거머쥐었다.
코믹 멜로물에서도 김명민의 연기 실력은 발휘됐다. SBS ‘불량가족’(2006)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건달 오달건으로 열연했다.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여자 김양아(남상미)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졌다. 서툰 사랑 표현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후 MBC ‘하얀거탑’(2007) 장준혁을 통해 10년 연기 내공을 꽃 피웠다. ‘하얀거탑’은 틀에 박힌 극 전개에서 벗어난 의료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진부한 러브 라인을 빼고 의사들의 애환과 욕망 위주로 밀도감 있게 그려냈다. 그 중심에 김명민이 있었다. 시청자들은 ‘하얀거탑’을 두고 “김명민을 위한 드라마”라는 찬사를 보냈다.
▶신윤복VS문근영
신윤복 역을 새롭게 소화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문근영도 마찬가지다. 문근영이 차기작을 ‘바람의 화원’으로 결정 짓고 남장여자로 등장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만큼 여성스러운 매력이 강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중성적인 캐릭터와 문근영은 얼핏 볼 때 어울리지 않았다.
남장여자 연기로 성공을 거둔 윤은혜와 줄곧 비교됐다. MBC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윤은혜가 연기한 고은찬 캐릭터는 대성공이었다. 부담감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아직 윤은혜만큼 열풍을 몰고 있지 않지만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반란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반응이다. 6회까지 방영된 현재 신윤복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문근영이 연기 중인 신윤복은 이정명의 동명 원작에서 묘사된 것과 다른 느낌이다. 원작 속 신윤복은 학구적인 스타일에 신비로운 매력을 지녔다면 드라마 속 신윤복은 당돌하면서도 엉뚱하다. 붓질 하나에도 눈빛이 매섭다. 외모 변화도 눈에 띈다. 짙은 눈썹과 큰 눈망울은 미소년 이미지같다.
문근영에 비해 박신양 연기에 대한 평은 저조한 편이다. 박신양은 첫 사극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작 SBS ‘쩐의 전쟁’ 금나라 캐릭터에서 별다른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시장의 위축과 웰 메이드 드라마 러쉬에 따라 톱스타들의 안방 귀환이 줄을 잇고 있다.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송혜교와 현빈을 비롯해 SBS ‘스타의 연인’ 으로 최지우도 합류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이병헌, 김태희, 김승우가 첩보 스파이물 ‘아이리스’로 돌아온다.
하지만 톱스타 배우들의 이름값과 연기력은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에게 각인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김명민과 문근영의 경우처럼 캐릭터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