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눈보다 빠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손은 눈보다 빨랐다. 전율을 일으켰던 송옥숙(정희연 역)의 '리베르 탱고'도, 감탄을 자아냈던 문근영(신윤복 역)의 '단오풍정'도 '눈'을 속이는 '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핸.드.싱.크. 가요계에 립싱크만큼 방송계에 많이 쓰이는 용어다. 최근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을 소재로한 드라마가 늘면서 드라마 속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 즉 핸드싱크의 쓰임이 커졌다.
물론 핸드싱크가 있다고 해서 배우들의 노력이 필요없는 건 아니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예리한 시청자들의 눈살을 견딜 수 없다. 배우들 모두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연습하는 것도 이 때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 속 보이지 않는 손의 비밀을 살펴봤다. 시청자의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핸드싱크의 마술, 무엇일까.
◆ "풀샷과 클로즈업의 역할분담"
핸드싱크는 일종의 속임수다. 시늉만 낼 뿐 직접 연주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손가는 대로 손가락을 내버려 둘 순 없다. 주법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시청자는 금새 드라마의 리얼리티에 트집을 잡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핸드싱크로 호평받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와 '바람의 화원'은 대역과 실연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을까. '베바'의 음악감독 서희태씨는 "클로즈업 할 때는 실제 연주자의 손이 등장하며 풀샷을 찍을 때는 배우들이 핸드싱크를 한다"고 말했다.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는 신윤복의 손도 마찬가지. 제작사 드라마 하우스의 배익현 프로듀서는 "어디까지가 대역이고 어디까지가 핸드싱크라고 정해진 룰은 없다"면서 "보통 세밀한 붓터치는 대역을 이용하고 기본적인 필선은 연기자가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 "정희연, 신윤복 손은 누구?"
핸드싱크를 보완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역이다. 두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손을 대신하는 대역은 음악과 미술 분야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와 거의 흡사한 연주 혹은 모사 장면은 '풀샷'의 핸드싱크와 '클로즈업'의 대역이 절묘하게 조화된 결과다.
예를 들어 문근영의 '단오풍정'에는 3명의 손이 등장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이종목 교수를 필두로 안국주, 백지혜, 구세진 등 제자들이 번갈아 문근영의 손을 대신했다. '베바'에서 화제를 모았던 송옥숙의 리베르 탱고신 실제 연주자는 첼리스트 김성희씨다. 송옥숙의 개인 지도를 맡고 있는 김성희씨는 풀샷의 핸드싱크를 이어받아 클로즈업 장면을 완성했다.
반면 김명민이 지위하는 강마에의 손은 대역이 아닌 실제 김명민의 손이다. 풀샷부터 클로즈업까지 직접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김명민은 촬영 6개월전부터 밤샘촬영이 이어지는 지금까지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에 임했다는 후문. '베바'의 서희태 음악감독이 꼽는 최고의 핸드싱커다.
◆ "핸드싱크 이상의 카메라 워크"
배우들의 핸드 싱크와 전문가들의 대역이 극속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질수 있었던 데는 카메라 워크의 힘도 크다. 아무리 배우가 기본 교육을 탄탄하게 받았다 해도 핸드 싱크가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이를 보안하는 것이 카메라의 테크닉과 컴퓨터 그래픽이다.
'베바'는 핸드 싱크의 한계를 음악의 생생함으로 보완한다. 제작진은 보다 실감나는 음을 담기 위해 오케스트라신은 중계차를 동원해 촬영한다. 서희태 감독은 "드라마에 중계차를 동원한 것은 최초다. 중계차 촬영의 경우 평균 7~8대의 카메라가 동원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실감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람의 화원'의 경우 동양화가 주는 어려움과 낯설음을 보완하기 위해 그림 그리는 신에 역동성을 더했다. 장태유 PD는 "슬로 모션과 패스트 모션과 같은 특수효과 구현이 가능한 베리캠과 광학 렌즈의 일종인 이노비전 렌즈로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효과를 줬다"며 카메라 워크의 비밀을 전했다.
◆ "완성도, 결국 배우의 몫"
기술적인 테크닉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못한 법이다. 두 드라마의 제작진은 "대역도 중요하고 효과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클래식과 동양화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배우의 이해없이는 실감나는 캐릭터 구현이 어렵다는 뜻이다.
'바람의 화원'의 배익현 프로듀서는 "정작 중요한 건 배우가 얼마나 전문가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느냐 부분이다.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드라마가 보다 다이나믹하게 그려질 수 있다"며 배우의 중요성을 전했다.
'베바'의 서희태 감독 역시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연주까지 하기는 무척 힘들다. 아무리 싱크라 하더라도 배우들이 정확히 해주지 않으면 장면의 묘를 살릴 수 없다"며 다행히 배우들이 잘해주고 있어 매 회 향상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공을 배우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