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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독창적이고 영리한 괴짜 코미디

 



 영화 '미쓰 홍당무'(제작 모호필름, 감독 이경미)는 한국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코미디 영화다. 보편적인 웃음을 주는 영화인 한편 B무비의 정서가 살아있는 작품이며 코미디라는 상위 장르 아래 다양한 하위 장르와 주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는 영리한 수작이다.

'미쓰 홍당무'에서 첫 번째로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명확한 캐릭터 구축이다. 캐릭터의 명확한 구축은 드라마의 개연성과 사실성, 입체성 그리고 관객의 몰입을 돕는 한편 불필요한 장면이 설명적으로 개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완성도나 경제성 면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주연배우 공효진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목표를 위해선 광적인 집요함도 불사하는 '왕따' 여교사 양미숙을 완벽히 소화해내 각종 여우주연상 자리를 예약했고, 양미숙과 한패가 되는 왕따 여중생 서종희으로 출연하는 '옥매와까' 서우와 미숙의 짝사랑이자 종희의 아버지인 동료 교사 서선생(이종혁 분)을 좋아하는 이유리 역의 황우슬혜 또한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일조했다.

'미쓰 홍당무'가 흥미로운 것은 장르적인 일관성이나 통속성이 아닌 자유분방한 이야기 전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 감칠맛 나는 대사의 향연 때문이다. 학생 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과 같은 학교 교사가 된 여자의 이야기라면 얼핏 로맨틱 코미디를 상상하게 되지만 남자주인공이 유부남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영화의 장르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안면홍조증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양미숙은 동료 교사인 미모의 이유리에게 단 하나만 남은 러시아어 교사 자리를 뺏기고 자신의 짝사랑인 서선생마저 뺏길 위기에 처한다. 미숙은 이유리와 서선생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서선생의 딸이자 자신의 제자인 종희를 끌어들이고, 종희는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숙의 계략에 동참한다. 미숙-유리, 미숙-종희의 대화 장면은 종종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시킬 정도로 속사포 같은 대사와 궤변을 늘어놓으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미숙과 종희가 한패가 되면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한바탕 소동극으로 변한다. 미숙과 유리, 서선생, 종희 그리고 서선생의 아내인 성은교(방은진 분)이 한자리에 모이는 후반부의 어학실 장면은 영화의 경로를 성장 드라마로 변경시킨다. '미쓰 홍당무'가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미숙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조롱이나 동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대체로 동정보다는 연민을, 조롱의 쓴웃음보다는 긍정의 미소에 가깝다.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안에 소동극과 성장극의 요소를 끌어안으며 소통의 문제와 여자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 등 다채로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펼쳐 보인다. 아직 하나의 신과 숏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전체적인 리듬을 조율하는 방식이 거칠긴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자유분방함이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미쓰 홍당무'는 '추격자' '영화는 영화다'와 함께 올 한해 가장 뛰어난 신인감독 데뷔작으로 기록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