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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영어]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 나희덕

“이 찬란한 도시에 입성하려면 신참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 예전 말을 버려라. 굳은 혀부터 풀어라. 그리고 주의깊게 들어라. 미국 도시의 외침과 함성을!” 이창래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에서 주인공은 아내가 이민 온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되뇌인다. 과거에 로마 시민이 되기 위해 라틴어를 배워야 했던 것처럼, 현대의 미국 도시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해야 한다. 그것만이 현대판 바벨탑인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나에게도 지난 몇 달이 낯선 땅에서 언어적 소수자로서 살아보는 첫 기회였다. 서로 국적이 다른 삼십여 명의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 속에서도 몇 개의 그룹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룹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기준이 지역도, 성별도, 연령도, 인종도 아닌 언어라는 점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에 따라 어울리는 그룹이 물과 기름처럼 나뉘었다. 미국 땅에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작가들은 발표나 토론도 유창하게 하고 정보나 표현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작품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수단을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경험하면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계층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아니라 영어를 할 수 있는 자와 할 수 없는 자로 나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노동과 생산 관계에서 생겨나는 자본 개념이 가치를 생산해내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은 문화자본이 다양한 기호화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데, 영어는 그 과정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자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에 일어나고 있는 영어열풍도 영어를 국제적 소통수단보다는 자본의 획득이나 신분의 상승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미국의 주류사회에 대한 선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언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예전 말을 버리고 굳은 혀부터 풀고 주의깊게 들어야’ 했다. 머리 속에서 낯선 단어들을 조합하고 귓가를 빠르게 미끄러져가는 말들을 붙잡는 것이 나에게 가장 고단한 노동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영어공부 좀 해둘 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영어의 필요성을 느낀 것일 뿐이다.

처음엔 생각의 절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열패감이 들었고, 영어라는 거대한 바벨탑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한국의 작가로서 여기에 왔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불편한 일일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점차 당당해질 수 있었다. 심리적인 위축감을 털어내고 나니 의사소통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얼마 전, 10대에 이민 와서 문학을 전공하고 영어로 소설을 쓰는 한국 여성을 만났다. 내가 물이나 공기를 마시듯 한국어로 사유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영어가 생활어이자 문학어였다. 그녀는 때로 문학작품을 읽거나 쓰면서 영어가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라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아름다운 언어가 출세의 수단이나 실용적 도구로만 취급되는 게 못내 서운하다고.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공부 좀 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원어로 읽으면서 그 말의 아름다운 결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다른 나라 작가들과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위해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영어캠프 한 번 보내지 않은 나에게도 뒤늦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