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광화문에서 만난 민규동 감독.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
"게이들이 창궐하는 영화?
편견, 동정, 배려 버리고 수평적 시선으로 그려"
"아주 오래된 연애를 마치고 마침내 의욕에 찬 결혼을 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가볍고 유머러스한 소재와 무겁고 어두운 주제 사이의 톤 조절을 한참 고민했는데, 조화를 이뤘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에요."
'앤티크:서양골동 양과자점'(13일 개봉)의 민규동(38) 감독은 이번 영화를 '마침내 성공한 연애 결혼'에 비유했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충무로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비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도중하차를 반복했던 여러 기획들. 그 엄격한 자본의 시험대를 통과한 결과가 이번 작품까지 10년 동안 3편의 과작(寡作)이다. "구상 4개월 만에 촬영에 돌입했던 데뷔작 '여고괴담2'(1999)는 순식간에 빠진 '크러쉬'(crush:홀딱 반함)였고, 다른 영화사의 기획을 받아들였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이 서로가 동의한 '중매 결혼'이었다면, '앤티크'는 요시나가 후미의 원작 일본 만화를 처음 만난 6년 전부터 꿈꿨던 결혼"이라는 것.
장르적으로 '앤티크'는 케이크를 소재로 한 꽃미남 배우 4명의 게이 로맨틱 코미디이자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와 치유'라는 민규동의 오래된 화두(話頭)가 똬리를 틀고 있다. 초등학교 때 유괴를 당한 적이 있는 진혁(주지훈), 처음 고백한 상대에게 "호모××, 뒈져버려"라는 욕을 먹은 게이 선우(김재욱), 망막 박리(剝離)로 권투의 꿈을 접은 기범(유아인), 청소년 시절 매맞는 엄마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수영(최지호).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상처를 볼모로 관객을 윽박지르거나 절규하는 게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고 때로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경지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감독은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딸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예외적인 일"이라면서 "(실제 현실에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데 이 작품의 전제가 있다"고 했다. 낫게 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와 치유'만큼이나 일관된 감독의 관심은 동성애다. 요즘은 "괜찮다 싶으면 여자친구가 있고, 완벽하다 싶으면 남자친구가 있고~"라고 투덜대는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TV 광고까지 나오는 세상이 됐지만, 10년 전 '여고괴담 2'에서 동성애를 다뤘을 때 그는 '사이코 감독' '변태 감독'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이번에도 "게이들이 창궐하는 영화"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창궐'은 페스트(흑사병)와 주로 호응하지 않느냐"며 웃었다.
어떤 관객에게는 '집착'으로 여겨질 만큼의 일관성. 이날 아침 네 살배기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는 감독은 "그래서 '위장 결혼'했다는 말을 듣는다"며 한 번 더 웃었다. 그러고는 '돌기'(突起)라는 생리학적 현상을 예로 들었다. 몸에서 가장 연약한 부분을 바이러스가 치고 들어오듯이 자신에게는 비밀과 상처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동성애라는 그릇에 담기게 된다는 것. 노인과 소녀의 사랑처럼 평범하지 않은 커플의 사랑에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는 "내 안의 우주를 확장시키고, 늘 더 큰 자극을 주는 화두"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동성애가 상품화되는 지경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여성에 대한 상품화라는 비판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 시기적으로 함께 진행됐던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라면서 "거창하게 표현하면 이런 비판이 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출발'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89학번인 그의 재학 시절 별명은 '신림동 황금허리'. 대학 졸업과 함께 '은퇴'했지만, 재학 당시에는 집회 현장에서 전설적인 춤꾼이자 공연 기획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또 활자 세대였던 만큼 청소년 시절의 꿈은 소설가였다. '앤티크'를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에는 이때 섭취한 자양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재능 많은 사내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