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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감독의 신작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중 결혼을 소재로 한 발칙한 코미디다.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원작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아내를 가진 남자와 축구 이야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이슈화했던 화제작이다.
평범한 회사원 덕훈(김주혁)은 애교가 넘치며 지적이기까지 한 인아(손예진)에게 호감을 갖는다. 둘은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열혈팬이란 공통점을 바탕으로 곧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인아는 한 사람만 사랑하는 걸 부정하며 자유로운 연애를 꿈꾼다. 그럴수록 덕훈은 인아에게 깊이 빠져든다. 결국 덕훈은 끈질긴 구애 끝에 인아와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나 인아는 덕훈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남자가 생겼고 그와도 결혼을 하겠다는.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덕훈의 시점으로 인아의 ‘이중 결혼 행각’을 드러낸다. 그에게 폴리아모리란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다. 덕훈이 인아가 낳은 딸이 정말 자기 아이인지 DNA 확인을 한다거나 뉴질랜드가 아닌 스페인으로 이민을 떠나는 장면 등 몇몇 설정은 각색됐다. 다만 “백만개의 흡착판이 나를 빨아들이고 이백만개의 부드러운 솔기가 쓰다듬는 것 같다”는 말초적인 성적묘사 대사들은 그대로 나온다.
한 여자를 공유한 두 남자가 서로 묘한 연대감을 나누는 점도 흥미롭다. 덕훈에게 이 남자는 결혼제도를 파괴하는 주범이자 새로운 가족 모델을 실현시키는 구성원이다. 일부다처 사회에서 종종 본처와 첩이 느꼈던 묘한 동류의식이 남성으로 전화된 사례다.
하지만 원작의 문제의식이 명확히 드러나진 않는다. 인아가 왜 이중 결혼에 집착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일부일처제의 인류사적토대가 얼마나 희박한지, 이에 근거한 결혼제도가 사랑을 지키는 보호막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옭아매는 족쇄인지에 대한 논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결국 다자연애, 결혼 담론 같은 화두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의 별난 취향 정도로 치환된 셈이다. 정윤수 감독은 “대화 중심의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취사선택을 했다”며 “되도록 즐겁고 가벼운 톤으로 바꾸려 했다”고 밝혔다. 손예진, 김주혁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에 힘을 불어넣는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영화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배우의 호연이 빛을 발한다. 손예진은 과감한 노출도 마다하지 않을 뿐더러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아를 잘 살려냈다. 김주혁 역시 사랑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소신남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