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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운 좋은 청년에서 눈빛 좋은 배우로

 

“유치원 때부터 영웅본색, 천장지구 같은 영화에 푹 빠졌어요. 온갖 드라마는 다 꿰고 있던 ‘드라마 키드’였답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소년은 울지 않는다'서 열연

"'김태희 동생'으로 떴지만 이젠 연기로 인정받고 싶어"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나 지갑 속 사진 한 장으로 드라마 감독의 눈을 사로잡고, 곧바로 '천국의 계단'에 캐스팅, 나오자마자 '신선한 눈빛'이라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단 3회 출연했을 뿐인데 두 번째 작품에선 바로 미니시리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2004년 KBS·SBS 신인상을 거머쥐고….

'김태희 동생'이 아니었으면 김형수(24), 아니 배우 이완이 이렇게 단숨에 스타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의 충무로 데뷔작 '소년은 울지 않는다'(6일 개봉)를 보다 보면 그에게서 김태희 얼굴을 차츰 지우게 된다. 일본 소설 '상흔'을 원작으로 한 이번 영화에서 그는 6·25 전쟁 뒤 폐허가 된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어른들과 경쟁을 벌이는, 다혈질이지만 정 많은 소년 종두 역할을 맡았다. 데뷔작부터 주인공. 냉정하고 이지적인 태호 역을 맡은 송창의와 함께 투 톱으로 극을 끌어간다. 당시 처절했던 상황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이번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이완이다. 50년대 소년처럼 보이기 위해 근육도 줄여가며 외모 변화에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무엇보다 강한 눈빛과 액션으로 '결국 살아남을 소년'의 처절한 슬픔을 온몸으로 극복하는, '따뜻한 카리스마의 화신'을 제대로 소화했다.

5일 만난 그에게 "운이 좋다"고 말을 건넸더니 "잘 안다"며 웃는다. "그래도 편하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드라마 찍을 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머리카락도 엄청 빠졌고요. 촬영 중 태풍을 만나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영하 20도 눈 바닥에서 20시간 동안 반팔과 맨발로 서 있은 적도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도 채찍이 목에 감긴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화상도 입고…."

숨찰 정도로 '몸을 던진' 연기를 설명하는 그. 그럼에도 배우 이완은 '김태희 동생'으로 부각돼 온 게 사실이고 자신에게도 '스트레스' 요인일 것. 하지만 '누나와 나는 별개의 존재'라든가, '김태희 동생이란 수식어는 잊어주세요' 같은 뻔한 말을 하진 않는 그이다. 다만 "같은 작품엔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고만 한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욕 먹죠."

오히려 그에게 김태희는 '스타 연기자'로서 부러움의 대상인 듯 했다. "누나 정도의 '급이 되니까' 재벌가 사람과의 염문설 같은 소문도 나잖아요. 전 뭐, 열심히 봐도 '난쟁이다' '목 짧다' '목 굵다' 이런 얘기밖에 없어요."

'쿨'한 세대답게 누나와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냉정하다. "누나 연기 못한다는 소리 다들 하시잖아요. 근데 제가 연기를 해보니까 누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나가 CF 연기는 정말 잘하거든요. 드라마 '온 에어'에 'CF 연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라는 대사가 나왔었죠.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영화 관계자들에게 제 존재감은 정말 미미했을 거예요.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얼굴 한두 번 본 정도, 아니면 김태희 동생? 이런 수준이었겠죠. 그들로부터 '가능성 있는 신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전과목 우수생'은 아니지만, 잘할 과목만 효율적으로 골라내는 재주를 지닌듯하다. 이번 작품엔 자신의 관심사인 전쟁이 담겨 있고, 체육학과 학생답게 액션 연기도 보여줄 수 있고, 그래서 강한 눈빛의 포스를 발산해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5년 전, 데뷔작인 '천국의 계단'을 보면서 연기가 정말 어색해 '방송 사고다. 큰일 났다'고 속으로 외쳤다는 이완. "이젠 조금 연기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진정한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건 의외로 소박했다. "영화 보다 보면 사흘 만에 내리는 거 종종 봤거든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적어도 일주일 만이라도 걸려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