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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
이순재·송옥숙 선배에게 독설… 존경하니까 매섭게 한번에 끝내야"
우리가 원한 독한 리더십… '베토벤 바이러스' 김명민 인터뷰
"명민아, 사인지 좀 준비해 놔라. 애들이 떼를 쓰고 난리다. 네 사인 받아오라고." "아, 예. 알겠습니다, 형님." 6일 밤 경기도 일산 MBC 드림센터 3층 복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마지막 공연 촬영을 앞둔 '강마에' 김명민 앞에서 '배용기' 박철민이 환하게 웃으며 '사인' 부탁을 한다. 지휘자 강마에는 독설을 앞세운 직설화법과 실력 본위 리더십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최강 캐릭터'. 이런 인물을 과장의 늪에 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는 김명민에 대한 평가가 뜨겁다. 이날 일본 취재진 기자 간담회를 가진 그를 만나 궁금했던 얘기들을 물어봤다.
―강마에 신드롬, 이유가 뭘까?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경기도 안 좋고 살기도 팍팍하니까 사람들 마음에 뭔가 응어리가 가득 차 있는데 강마에가 독설로 그걸 풀어주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시원하지 않나? 가만히 들어보면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자상하고 멋진 남자는 자주 봐 왔으니까 강마에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다."
―강마에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사정책이 아니겠나? 강마에는 학벌, 경력 이런 것 전혀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 하나만 본다. 그렇지 못한 사회니까 강마에가 공감을 사고 있는 것 같다."
―괴팍하게 들리는 말투는 직접 고안해낸 것인가?
"그렇다. 초반에 너무 강하게 가면 시청자들이 거북해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양념처럼 던져봤는데 반응이 오더라. 그래서 3회부터 본격적으로 고저(高低)를 많이 주며 개성 있는 말투를 썼다. 사실, 조금만 방심하면 내 말투가 나오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항상 감정을 유지해야 된다. 그래서 동료들과 떠들고 장난치고 싶어도 꾹 참는다. 장근석 등 후배들이 처음에 날 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늘 화난 사람처럼 있고 농담도 안 하니까. 하하."
―개성 강한 배역을 위해 눈썹 뒷부분을 위로 올라가게 다듬은 것도 화제다.
"큰일이다. 원래 눈썹 모양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아침 거울에 비친 내 눈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변 잔털을 자꾸 깎다 보니까 눈썹이 정말 조금 남아 버렸다."
―지휘 연습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솔직히 말해서 열심히 했다. 연습한 만큼 화면에 나오니까. 그래도 아쉬움이 많다. 5회까지 공연은 준비할 시간이 많았는데, '합창' 공연 이후의 곡은 2~3일 전에 전달받아서 연습 시간이 빠듯했다."
―여태까지 당신의 대표작으로 꼽혔던 '하얀 거탑'의 장준혁과 강마에는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장준혁은 천재, 강마에는 처절한 노력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장준혁은 또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인맥을 잘 활용하고 무릎 꿇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강마에는 지휘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자존심을 절대 굽히지 않는 외골수다. 둘 다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지만 강마에가 더 귀엽고 측은하게 보이지 않나? 내 성격은 아무래도 강마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불멸의 이순신',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결이 뭘까?
"안 된 것도 있다. 영화 쪽에서 좀 그랬다. 성공한 드라마들의 경우, 나와 비슷하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정성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게 힘이었던 것 같다."
간담회에서 김명민을 만난 한 일본측 기자는 "저한테 똥덩어리(드라마 속 연주자를 경멸하는 대사)라고 하실 것 같아요"라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김명민은 "아무한테나 안 그러죠. 실력이 없는 사람들한테나"라며 웃는다.
―이순재, 송옥숙 등 대선배들에게 독설을 날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존경하는 선배에게니까 더 매섭고 독하게 해야 한다. 작은 실수라도 해서 NG가 나면 몇 번씩 독설을 퍼부어야 되니까 더 누를 끼치게 된다. 선배님들이 나를 못된 지휘자로 느낄 수 있게끔 더 긴장하고 몰입한다."
―명대사가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는다면?
"아, 정말 많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하라니까 머릿속이 하얘진다. 대사 하고 나서 '아~ 좋아'라고 혼잣말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당신한테 연기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하면 너무 뻔한 것 같고, 음 항상 앞으로 도전해야 될 과제인 것 같다."
―'불멸의 이순신'에 캐스팅되기 직전, 배우로서 잘 안 풀려 고민하던 당신은 뉴질랜드로 이민 갈 계획도 세웠다고 했다. 그때 정말 이민 갔으면 어땠을까?
"뭐 뉴질랜드 갔더라도 거기서 내 길을 찾아서 잘 살았을 거다. 연기는 하지 않았겠지만. 그때 '불멸의 이순신'을 만나지 못했으면, 연기가 내 길이 아니었던 거다."
촬영을 위해 공개홀로 들어가기 직전 김명민을 붙잡고 물었다. "스스로 연기 잘한다고 감탄한 적은 없느냐?"고.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보낸 그는 "그런 생각은 연기자에게 금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저도 제 연기 보면서 '이상하다', '못 봐 주겠다'는 생각 자주 해요. 주변에서 칭찬해 주시는 거지, 제가 저를 칭찬하면 안 되죠."